마취 사고는 수의사의 실력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생한다. 완전히 건강한 환자를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마취해도, 그 중 극소수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수의학에서 수술과 관련된 사망률(Perioperative mortality)은 이미 문헌고찰 연구된 바 있다 (Brodbelt, D. (2009). Perioperative mortality in small animal anaesthesia. The Veterinary Journal, 182(2), 152-161.).
(참고로, 표본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좀 더 최근의 후향적 연구결과도 있다. Matthews, N. S., Mohn, T. J., Yang, M., Spofford, N., Marsh, A., Faunt, K., … & Lefebvre, S. L. (2017). Factors associated with anesthetic-related death in dogs and cats in primary care veterinary hospitals. Journal of the American Veterinary Medical Association, 250(6), 655-665. 두 연구에서 제시하는 사망률은 비슷하다.)
ASA Status 2 이하 (건강하거나 가벼운 질환을 가진 환자) 기준, 마취 관련으로 사망할 확률은 강아지에서 0.05%, 고양이에서 0.11%로 나타난다. (신뢰구간은 각각 0.04 – 0.07%, 0.09 – 0.14%)
“저희 동물병원은 마취 사고 한 번도 없었습니다” 라는 내용의 홍보 문구는 그래서 마케팅적으로 훌륭하다. 0.05%라는 사망 가능성은 매일 환자를 보는 수의사에게는 건조한 숫자에 불과할지 몰라도, 보호자 가운데 누군가는 수술대 앞에서 하나의 세계가 무너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많은 반려동물 보호자들이 마취 사고의 가능성을 두려워하며, 마취가 필요한 수술/시술은 가능한 기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오랫동안 마취 사고가 없었다고 홍보하면, 마취가 불가피한 수술을 앞두고 여러 동물병원을 검색하고 있는 보호자에게 ‘이 곳은 그만큼 마취에 능숙한 병원인가 보다’ 라는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마취 사고 없었다는 곳은 정말 믿을 수 있는 동물병원일까
하지만, 오랫동안 마취 사고 없었다는게 정말로 믿을 수 있는 병원이라는 뜻일까? 통계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대규모 연구에서 이미 알려진 사망률이 있다는 이야기는, 어떤 동물병원이나 수의사가 N천건의 수술(마취)를 하는 동안 한 번도 사망 사고가 없었을 확률도 역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Perioperative mortality가 더 넓은 개념이고 마취 사고로 인한 사망과 동의어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필드에서 보호자가 두려워하는 건 이유가 뭐가 됐든 수술과 관련된 사망인거지 그 원인이 마취인지 술후 합병증인지 따지는 건 실익이 없으므로 여기서는 같은 선상에서 논의하기로 한다)
한 번의 마취에서 마취 사고 가 일어날 확률이 0.1%이라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은 99.9% (0.999)이다.
각각의 마취가 이전 마취에 영향을 주지 않는 독립 시행이라고 가정하면, N번의 마취에서 한 번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은 0.999를 N번 곱하여 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수의사가 ASA Status 2 이하인 고양이 스케일링을 200번 했을 때, 한 번도 사고가 나지 않을 확률은 0.999^200 = 0.819, 81.9%다.
그런데 동물병원은 건강한 환자만 마취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아픈 동물이 오는 곳이기 때문에, 마취 위험이 적지 않아도 위험을 감수하고 마취를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자주 생긴다.
예를 들어, 일선에서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폐쇄형 자궁축농증으로 진단된 환자라면, 당장의 임상증상이 비교적 가볍더라도 최소한 ASA Status 4 (중증 전신질환) 이상인 위험군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수술 결정을 망설여서는 안 된다. 폐쇄형 자궁축농증은 빠른 수술적 개입 없이 그냥 두면 거의 100% 사망하는 질환이다. 그래서 사망 위험이 다른 수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음을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수술을 진행하게 된다.
기저질환이 있는 반려동물 200마리를 마취했을 때, 단 한 마리도 사망하지 않을 확률은
연구는 ASA Status 3 이상을 기준으로 할 때 마취 중 사망률을 개에서 1.33%, 고양이에서 1.40%로 제시하고 있다(신뢰구간은 각각 1.07 – 1.60%, 1.12 – 1.68%). 그렇다면 어떤 수의사가 자궁축농증 강아지 수술을 200번 했을 때 그때까지 한 마리도 사망하지 않을 확률은? 0.987^200 = 0.073, 7.3% 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 현장에서는 동물병원이나 수의사가 수술시점에 접하는 환자들의 ASA Status를 고를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ASA Status가 2와 3 사이에 있을테니, 마취 사망가능성도 0.08%와 1.37%의 가운데쯤에 있는 0.5% 정도라고 하자. 이때 수술사례가 1000건이면? 그때까지 마취 사고가 없었을 가능성은 0.007, 불과 0.7%에 불과하게 된다.
더 극단적으로, 마취사고를 너무나 싫어하는 어떤 동물병원이나 수의사가 있어서 적절한 마취전검사를 통해 ASA Status가 2 이하인, 건강한 강아지임을 확실히 한 다음 (잠복고환이 아닌) 오로지 수컷 중성화수술만 했다고 하자. 이런 경우라도 수술건수가 1000건이 넘어가면 마취사고가 제로일 확률은 60.6%, 2000건이 넘어가면 36.8%이 된다.

결국, ‘장기간 임상을 하면서 마취사고가 없었다’는 홍보 문구가 의미하는 건, 둘 중 하나다. 충분한 마취/수술 경험이 없어서 아직 마취 사고를 경험하지 못했거나, 마취 사고가 있었는데 (사망원인을 기저질환의 합병증 등으로 추정하고)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거나.